한글 SACONNECTS (구세군 소식)

“하나님, 제게 시간을 더 주세요!”

정인선 자매는 일찍이 남한의 한 독실한 기독교 신자 가정에서 태어나 주한 미군이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습니다. 남편이 지금 CBS TV의 유명한 주말 프로그램인 “60 Minutes” 의 진행을 맡고 있는 Harry Reasoner의 친인척 되는 분이었기에 정인순 자매의 중간 이름도 Reasoner 입니다. 그런데 이 정인선 자매의 인생역전 역시 이 “60 Minutes”의 기막힌 이야기 거리라 믿습니다. 아마도 이 자매의 미국생활 만큼 고되고 배신당하고 아픈 삶을 사신분도 흔치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펜실베니아 주의 East Stroudsburg에 있는 구세군교회에서 마련한 시설인 안식처(Shelter)에 오게 됨으로 모든 아픔은 기쁨과 감사 그리고 봉사로 바뀌게 됩니다.

본래 이 자매는 조용하고 겸손한 성격인데다가, 67년의 연륜이 있어서인지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지내는 분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일에 쏟고 계십니다. 늘 이런 말씀을 합니다. “저는 옆에 있는 분들을 도울 때 힘이 납니다. 보람을 느낍니다.” 한번은 이 여성시설 안에서 자주 우는 분이 있었는데, 그분의 눈물과 아픔을 마치 자기의 아픔과 눈물처럼 닦아주고 안아주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정인선 자매를 아는 분들은 모두 그것이 그가 타고난 성품이라고 말합니다.

 

훈훈한 영혼/ 도움의 정신:

“저는 그저 그 우는 여인을 위해 기도하고 안아주고 싶습니다.” 정인선 자매는 계속해서, “저는 그 분이 누구인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아십니다.” 이 구세군 East Stroudsburg 교회의 시설책임자인 Cari Friend는 정인선 자매를 가리켜 “심령이 활짝 열린 분”이라고 말 합니다. “이 자매는 사람들이 과거 무슨 짓을 했건 어디서 왔건 관계없이 사람이면 누구나 도움을 주고받으며, 갱생의 길, 희망의 앞길을 열어 가야한다는 신념을 가진 분”이라며 “이 분의 이 신념이 바로 제가 본 받아야 할 교훈임을 늘 깨닫습니다”고 힘주어 말합니다.

“만약 당신이 술에 취한 채 길 바닥에 누어있다면 이 자매는 반듯이 당신을 보고 기도하며 부축해 일으키실 분입니다.” 한번은, 집이 없이 자기 배달 차에 기거하던 남자분이 구세군시설에 들어갈 수도 없는 것이 이분이 당료병환자라 구세군시설에서 마련한 음식을 먹을 수 없자, 정인선 자매는 이 분이 자기 몸에 맞는 음식을 사 먹도록 현금을 손에 쥐어 주고 근방에 있는 식료품 가게까지 같이 갔습니다.

또 한 번은 길에서 젊은 여성이 식비로 1불을 구걸할 때 가슴이 아팠던 것은 자기 딸 Rachel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젊은 여성의 눈빛을 보는 순간 마약을 한다는 것을 알고는 “젊은이여 1불 가지고는 음식을 못삽니다.”라고 말하고는 그 여인의 손을 잡고 가서 충분한 한 끼의 음식을 사 줌으로 술이나 마약을 못하게 했습니다. 이 자매의 사려 깊은 애정은 어머니에게 배운 것이고 또 서울에 살 때 배고픈 사람들에게서 배운 경험에서 라고 합니다.

 

성도의 가정:

정인선 자매에게 가정이란 너무나 소중한 곳이었습니다. “저의 어머님은 어떤 환경에서도 긍정적인 분이셨습니다.” “네가 진정 크리스천이라면 너는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어려운 이웃을 도와야 한다고 늘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자매는 아버지 없이 어머니 밑에서 자라면서 진정한 신앙과 참 삶의 정신을 어머니에게서 배운 분입니다.

그녀가 17세 되던 해 고등학교학생으로 산상집회 성경공부 시간에 주님을 영접하였습니다. 그 후 Dance강사로 일 하면서 남편인 David Reasoner를 교습 중에 만났고, 그때부터 그가 줄곧(1974-75) 청혼해서 마침내 1976년에 결혼하고 그 이듬해 1977년 각각 도미해서 Kansas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그 가정의 시련:

처음 남편은 기독교인으로 또한 성실한 남편으로 출발했으나 술과 마약으로 파경을 맞게 되는 와중에도 정인선 자매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저는 아내의 자리를 힘써 지켰습니다.” 뱃속에 아기(딸Rachel)을 갖고도 2-3개의 직업을 가지고 줄곧 일하면서 남편의 불안한 재정적 뒷받침을 해왔으나 끝내 일어설 수 없었습니다. 정인선 자매는 마침내 Kansas를 떠나게 되었고 California, Virginia, New York City와 New Jersey를 거쳐 5년 전 이곳 Pennsylvania, East Stroudsburg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이 와중에 남편을 암으로 세상을 떠나보내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새로운 안식처:

“참으로 정인선 자매는 험한 인생의 풍랑을 겪은 분입니다.” 이 여성시설의 Cari Friend는 말합니다. “이 풍파 중에도 항상 저를 손잡고 인도하신 분은 바로 주님입니다. 밤중에 기도 할 때마다 제 옆에는 주님이 계셨습니다.” 라는 말을 늘 그녀에게서 들었다고 합니다. 정인선 자매가 처음 펜실베니아로 와서는 딸 Rachel 과함께 살았으나 도저히 함께할 수 없는 주거환경이라 그곳을 떠나 혼자 이곳 구세군교회의 도움을 찾아왔고 교회 벽에 걸린 예수님의 얼굴을 보는 순간 이곳이 내가 살 곳, 숨 쉴 수 있는 안식의 자리라는 걸 순간적으로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이 예수님의 사진을 볼 때면 매번 그때 그 감격이 새롭다고 합니다. “바로 저분 저 예수님이 나의 진정한 주님이십니다!” 정인선 자매가 4개월간 이곳에 계시면서 주위의 모든 분들이 이 분을 엄마(Momma) 라고 부르게 만든 한 가지 이유 그것은 한 마디로 그 분의 열린 마음, 열린 심령 때문일 것이라고 Friend는 힘주어 말합니다.

 

열린 :

“갈 곳이 없는 딱한 여인들(Homeless) 또 학대와 폭력에 견디다 못해 뛰쳐나온 여인들을 보면, 이 정인선 자매는 놓치지 않고 성경을 펴들고 “자매님 오세요. 나와 성경 읽고 함께 기도해요”라고 합니다. Friend는 계속 이렇게 증언합니다. “이 자매는 이제는 주님의 입이요 손발이 되어 사는 사명자 입니다. 이 버려진 여인들을 돌보는 목양자로 부름 받은 분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일 년 전쯤 정인선 자매는 교회 근방의 노인아파트를 분양받고 가셔서 인근 주민들을 상대로 성경공부를 통해 전도에 앞장서고 계십니다. 매 주일과 화요일이면 빠짐없이 성경공부, 여성가정단 모임에 5마일 정도를 걸어서 교회에 오가고 계십니다.

“그 분이 교회 가깝게 사신다면 아마도 교회에 줄곧 붙어 사실 겁니다.” “그 녀는 교회를 사랑합니다. 그녀는 항상 그녀가 50년 만에 처음으로 평화롭고 조용한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라고 나에게 말했습니다.” 라고 Friend는 말합니다. 이 자매는 주님이 자기를 부르시는 소리를 들은 분입니다.

 

열린 앞날 그리고 할일 :

정인선 자매는 마사지 치료자격증을 소지한 자로서 머리손질과 손, 발, 또 안 면 미용사로서 교회 어른들을 돕고 이웃을 향해 열린 마음, 열린 심령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계속 할 일을 찾아 나아갈 것입니다.

정인선 자매는 작년에도 성탄 자선냄비사역을 맡아 하루 12시간씩 엿새 동안 일한 분입니다. “자선냄비 종을 치는 일은 일이 아니라 제게는 기쁨입니다. 어린 손들이 동전을 넣는 모습, 이 기쁨을 저는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정인선 자매는 제 등 뒤에서는 늘 주님이 저를 지켜보고 계세요! 라고 합니다. “주님이 날 사랑하시니 저절로 저도 이웃을 사랑하게 되죠. 제가 주님만큼 하겠어요? 물론 못하지요. 그렇지만 제 남은 생애동안 저는 힘껏 이웃을 사랑하며 살 것 입니다. 천국에서 주님 곁에 앉고 싶어 서지요” 이 자매는 오늘도 이런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 제게 시간을 더 주세요. 아멘”

Robert Mitch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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